반응형


등장인물

찰스 : 내성적인 성향의 8년차 회사원.

백발 노인 : 마을의 의사결정자로 무한 권력을 갖고 있는 정신적 지주.




소원이 이루어지다

 대기업에서 광고 영업 업무를 하는 찰스는 오늘도 고된 하루를 마쳤다. 8년이나 됐는데도 업무가 익숙해지지 않는 건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다.  잦은 야근으로 인한 불만도 늘어만 간다.

'하.. 회사 생활 빡세네.. 돈 벌어 먹고 살기 힘들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퇴근 하던 중, 포털에서 저학년 학생들의 하교 시간을 오후 3시로 늦추는 방안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됐다. 댓글을 보니 '학교에 오래 있으면 아이들이 힘들어 한다',  '교사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난다' 등의 내용이 있었다. 댓글을 보는 순간 찰스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방학도 있고, 칼퇴도 하는 선생이 무슨 업무 부담이야! 고작 꼬마 애들 봐주는데 뭐가 힘들다고, 아오.. 연금도 많이 받는다던데 그거 다 국민연금이랑 통합해서 줘야 하는거 아냐? 그러고보면 초등교사가 날로 먹는 제일 편한 직업같아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은 찰스는 백발 노인을 찾아갔다. 백발 노인은 늦은 밤인데도 흔쾌히 찰스를 반겼다.

이 늦은 밤에 무슨 일인가? 뭔가 고민이 있는 면상이로군!

찰스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아요. 이것저것 생각 해보니 초등학교 선생님이 최고인 것 같아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백발 노인은 잠시 바닥을 보며 골똘히 생각하더니 찰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럼 내일부터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해보게. 마을 사람들에게는 내가 이야기 해보겠네

 예상 외로 너무 쉽게 자신의 고민이 해결되자 찰스는 뛸 듯이 기뻤다. 그렇게 찰스의 초등학교 선생님 생활이 시작됐다.


조직은 어느 곳이든..

 아침 일찍 교무 회의가 시작 됐다. 이번 학기에 담당할 업무를 나눠야 하는데 상황을 보니 '전교 어린이 회의 업무'는 다들 꺼리는 눈치다. 갓 들어온 찰스가 하는 게 좋겠다며 연차가 높은 선생님이 찰스를 추천했다. 그랬더니 너도나도 다들 찰스를 추천하는 게 아닌가! 결국 찰스가 담당하게 됐다. 그런데 이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행사 전날에는 늦게까지 남아서 행사 준비를 해야했고, 매주 당일 날에는 1시간 일찍 출근해서 셋팅해야 했기 때문이다. 찰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짬이 안되면 어딜가나 비슷하군'


이래도 뭐라 하고, 저래도 뭐라 하고

 찰스에게 수업 시간은 혼돈 그 자체였다. 아이들이 어찌나 말을 안 듣는지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옛날 학교에서는 맞으면서 배웠는데, 이젠 때릴 수도 없었다보니 찰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엔 장난꾸러기 녀석 한 명이  친구에게 장난치다가 뺨에 생채기를 내버렸는데,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와 찰스에게 따지기도 했다. 그런 일이 많다보니 찰스는 아이들을 보수적으로 통제하고 싶었으나 그래도 도무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무섭게 대했더니 또 무섭게 했다고 학부모들에게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찰스는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또 어느 날은 축구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다리가 다소 불편한 아이가 있어 학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얘들아, 미쉘은 다칠 수 있으니 미쉘한테는 공 차지 않도록 하렴

다음 날, 미쉘의 부모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애한테는 공 주지 말라고 했다면서요? 그러면 애가 뭐가 되요? 친구들이랑 어울리지 못하면 왕따 당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시면 안 되죠.

 당황한 찰스는 일단 죄송하다고 말하고, 다음부터는 주의하겠다며 학부모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며칠 뒤, 단체 줄넘기 수업에서 미쉘이 넘어져 다리에 생채기가 생겼는데, 바로 학부모에게 연락이 왔다.

아니, 다리 불편한 애한테 줄넘기를 그대로 시키시면 어떡해요? 애 잘못되면 선생님이 책임지실 거예요?

 찰스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학부모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도무지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곤 왠지 초등학교 업무가 극한 감정 노동이라고 느껴졌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힘든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 찰스를 교무부장이 붙잡는다.

어디가요? 아직 퇴근하려면 멀었는데? 체험학습 사전답사 보고서랑 체육대회 예산안이랑 다음학기 수업 계획표랑 공개수업 계획안 작성해서 내일까지 올려주세요.

 교사의 행정 업무에 대해선 전혀 몰랐던 찰스는 심히 당황했다.  수업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회사에서 하던 운영업무가 학교에도 있었다니!!


카톡은 양반

 7시까지 야근을 하고 나서, 밖에서 동료 선생님들과 밥을 먹고 집에 오니 벌써 저녁 9시다. 이런 저런 집안 정리를 하고, 뉴스를 보고 나니 10시가 되었고, 샤워를 마치니 10시 30분이다. 핸드폰을 보니 전화 3통이 와있고, 카톡에는 왜 전화를 안 받느냐는 학부모의 톡이 와있다.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아 찰스는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학부모는 당연하다는 듯이 묻는다

내일 미술 준비물이 뭐죠? 아이가 기억을 못하네요

 그것은 시작이었다. 밤이고 낮이고 상관을 하지 않던 학부모는 주말에도 연락이 오곤 했다.


엄마가 암에 걸리다

 초등 교사로 열심히 일하던 찰스는 아빠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찰스야.. 엄마가 대장암이란다..

 하지만 회사원과 달리 교사는 학기 중에 연가를 자유롭게 쓸 수 없었다. 학기 중 연가는 교장 재량으로 사용가능하지만 교장도 학부모의 컴플레인으로부터 완전 자유로울 순 없었다. 교장에게 부모님 병환으로 5일 연가를 요청했으나 교장으로부터 한 마디 답변이 돌아왔다.

이걸 허락해주면.. 다른 사람도 허락해 줘야해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혹시 간병인 구할 돈이 없어서 그런 건가요? 그런거라면 친척에게 병간호 부탁하면 되지 않나요? 학기 중에 담임 교사가 일주일이나 자리를 비우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방학은 방학인데 말이지

 회사생활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방학을 처음 맞이하게 된 찰스. 이 방학으로 그간의 힘든 교사 생활을 사르르 녹여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방학이 길지 않았다. 3개월 정도 쉬는 줄 알았는데 30일 정도였고, 그 기간 동안에도 며칠은 학교에 나가야 했으며, 담당하고 있는 학교업무와 관련하여 출장을 며칠씩 가고 트렌드에 발맞춘 국가 교육과정의 변화에 따라 직무연수를 들어야 했다. 다음학기 수업 준비도 해야했다. 그러다보니 실질적으로 쉬는 날은 15일 정도 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회사에서는 절대 오랜 기간 쉴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회사원이었을 때는 정말 길어 보였던 초등교사의 방학이 실제 경험하니 너무나 짧게 느껴지긴 했다.


통장 잔고가 왜 이럴까

  좌충우돌 교직 생활을 시작했던 찰스는 첫 달 월급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찰스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통장에 고작 180만원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 월급이 적다고는 들었지만 자신이 받던 월급에서 턱 없이 적은 액수에 허탈감이 들었다.

'180만원이라고? 헐..최저임금 받는 아르바이트랑 큰 차이가 안나네'

황당했던 찰스는 주변 교사들에게 물어봤고, 동료 교사는 "교사 월급은 퇴직금과 연금으로 대부분이 빠져 나간다"고 답해줬다. 이해는 갔지만 교사 월급이 내년에는 1%대 인상이라는데 월급 200만원을 받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는 생각에 착잡해졌다. 그리곤 교사 연금이 많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찰스의 선택

 1년이 지난 뒤, 백발 노인은 찰스에게 찾아와 물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보니 어떤가? 만족하는가?

찰스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생각했던 것 보다 힘든 일이 많네요. 좋은 점도 있긴 한데.. 회사 생활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크게 다른 점은 없는 것 같아요. 이거나 그거나...


 모든 회사원이, 모든 교사가 위 이야기 같진 않을 것이다. 당연히 더 좋거나 더 나쁜 케이스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위 이야기가 실제로 맞다/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다.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건, 경험해보지 않은,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쉽게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많은 상황에서 그렇다. 콘서트 무대 뒤에는 투자부터 홍보, 마케팅, 예산의 문제, 섭외의 문제 등등 여러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인간사가 모두 그렇겠지만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맞출 수는 없기에 포기할 건 포기하고, 선택할 수 있는 요소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콘서트의 무대만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왜 조명을 이렇게 했으며, 연출이 왜 이렇고, 백댄서를 왜 적게 했으며 등등의 문제를 제기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교육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의 현장과 교사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직업을 쉬운 일이라고 평가하는 일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그 일에 대해 빠삭하게 공부라도 한 후에 이야기를 꺼내는 게 맞다. 섣부른 평가와 비판은 감정적인 오해만 일으킬 뿐이다.

반응형

'창고 > 아무개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0) 2018.09.05
왜 여자친구가 없는지 알겠다  (0) 2018.09.01
창의력의 재해석  (0) 2018.08.26
행복의 조건  (0) 2018.08.19
나 빼고 다들 멍청한 것 같다고 느낀다면  (0) 2018.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