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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살 때로 기억한다. 같은 대학교 고등학교 동문회를 한다는데 남자들만 있다보니 다소 모임에 활력이 없었다. 군대 제대했는데 군대 모임 같은 느낌이랄까? 참고로 나는 남중, 남고를 나왔다. 그래서 여차저차 만든 이벤트가 여고를 나온 여대 동문회와 조인트를 하는 것이었다. 대 to the 박! 청춘남녀들이 모이니 분위기는 후끈 달아 올랐다. 유후~ 아싸라비아~

 첫 번째 조인트 동문회를 나름 재밌게(?) 마치고, 한달 뒤쯤, 두 번째 동문회가 열렸는데 한 여자 후배로부터 "친구랑 같이 있어서 30분 정도만 동문회 모임에 잠깐 들리겠다"는 연락이 왔다. 다들 '뭐, 그래라'라는 생각으로 안부를 물으며 맥주 한 잔씩 들이켰다. 잠시 후에, 여자 후배는 예쁘장한 친구와 모임에 합류 했는데, 말한대로 30분 정도만 있다가 둘이 홀연히 자리를 떳다. 남은 사람들은 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모임을 이어 나갔다. 재밌다~ 재밌다~

모임이 끝나고 다음 날, 여자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빠, 나랑 같이 왔던 친구 기억하죠?"

"응, 기억하지"

"어때요?"

"응? 뭐가?"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뭘 묻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 재차 물었다.

"친구가 오빠 마음에 든다고 소개해 달라고 해서요. 만나 볼래요?"

유후~ 10년이 넘은 일이지만 기분 좋은 사건이다. 잠깐 보고 마음에 들어 날 소개시켜 달라고 하다니! 나의 전성기~ 음하하. 당연히 땡큐 아니겠는가?

"응~ 만나 볼게~"

그렇게 그 아이와 만났지만 그 아이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 외에 딱히 운명적으로 마음이 끌리거나 확~ 동하는 건 없었다. 그래도 그 아이로부터 적극적으로 애프터(?)가 와서 3~4번을 계속 만났던 것 같다. 뭐 그렇게 여자 쪽에서 대쉬가 들어온 것도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놀라웠던 건 적극적으로 계속 감정을 어필한 점이었다. 3~4번을 만나도 관계의 진척이 없어서인지, 그 아이는 점점 조급해져서 나를 좋아한다는 티를 점점 노골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노골적으로 마음을 받아놓고, 아무런 반응도 해주지 않은 건 참 못된 짓이었던 것 같다. 결국 그 아이는 좋아한다는 말을 한동안 대놓고 표현하다가 자신이 아플 때 내가 적극적으로 반응을 하지 않자 마음을 접게 되었다.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지만 밤 늦게 불렀을 때 내가 와주길 바랬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내 연애사에 용기라는 걸 불어 넣어준 중요한 경험이었다. 사실 이 전에는 관심있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용기내지 못하고 혼자 생각만 하다가 지나치는 경우가 99.9%였다. 그렇게 지나간 인연은 계속 머리에 남고 후회를 하게 만들었다. 짝사랑하다가 혼자 찌질하게 엉엉 운 적도 있었다.  '말이라도 걸어볼 걸..'

 그 아이는 그 어린 나이부터 어떻게 그렇게 감정 표현을 잘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용기있게, 당당하게 상대방에게 말할 수 있었다는 게 존경(?)스러 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상대방이 나였다는 건 축복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당시에 나의 잘못된 대처로 그 아이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죄책감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감정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걸 간접 경험하고서는 나도 그렇게 연애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그 이후로는 마음이 가는대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 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의 아내와 만나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아름다운 마무리. 

후회하지 말고, 당당하게 말하자. 단, 표현 방식은 세련되게... 사랑도 마케팅은 꼭 필요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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