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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자신도 모르게 꼰대가 됐을지도 모르는 젊은 꼰대들에게 바칩니다.


어떤 직장인 이야기

 우리 팀에는 입사한 지 1년 정도 지난 신입사원이 있다. 꽤나 열심히 하려는 친구라 태도 측면에서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역량 측면에서는 사실 잘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많이 부족하다. 보고서나 이메일 쓰는 걸 보면 두서 없이, 맥락 없이, 개념 정의 없이 쓰는 것도 계속 눈에 거슬리고, 잘못된 아이디어를 가지고 끙끙대거나 밀어 붙이는 점도 안타깝기 그지 없다. 실제로 이 친구가 쓴 글을 보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타부서 팀장의 의견이 종종 있었기도 했고 말이다.  '분명 나도 저런 신입사원 시절이 있었을 텐데' 하면서 이 친구를 어떻게든 잘 성장시켜서 역량을 인정받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개선해야할 부분이 보일 때마다 피드백을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신경쓰면서 피드백을 주려하니 이 친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 엉망인게 아닌가? 결국 이메일 내용을 하나하나 보면서 피드백을 주고, 아이디어가 나오면 반박하거나 이걸 왜 해야하는지 알려주고, 잘못된 액션을 취하려고 하면 그 액션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짚어줬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나는 이 친구의 모든 일을 지적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친구는 내가 피드백을 줄 때마다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내 피드백에 억지 반박을 하는 일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이 친구는 분명 계속 혼자 삽질하면서 정체될 거 같은데... 인정받기도 어려울 거고.. 그런데 나한테 피드백 받는 걸 좋아하는 거 같진 않고.. 안타깝네..


 이 상황은 직장인 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간에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부모는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거나 실패하는 걸 줄이기 위해 이런 저런 조언을 주거나, 때로는 명령하기도 한다. 그런데 자식은 곧이 곧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면 부모는 화를 내며 강압적으로 대하거나 포기하기도 한다. 

 좀 더 젊은 친구들이 와 닿을 만한 비유를 들자면 학교 선배와 후배 관계가 있겠다. 선배가 더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있을 테니 후배에게 알려주고 싶은 게 많을 수밖에 없다. 연애든 시험이든 다 해봤던 것들이라 본인이 실패했던 코스로 직진하는 후배를 보면 안타깝거나 답답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국 꼰대가 되는 것도 모른 채..

피드백의 원칙

 피드백이나 조언에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 상대방이 원할 때만 주는 것이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 피드백이나 조언을 주는 건 상대방을 위한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을 위한 것일 뿐이다. 신입사원이 성장을 원하지 않고, 인정을 원하지 않는데 선배가 굳이 참견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이가 원하지 않는데 피드백이나 조언을 주려는 건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 그저 부모 스스로의 욕심이 아닐까?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하지만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 상대방을 위한다는 건 모순이다. 그저 오지랖이고 자기 만족이다. 좀 더 깊게 생각해 보자.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피드백과 조언을 해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은 뭐가 있을까? 

첫째, 상대방이 내 피드백과 조언을 따르지 않을 때, 괘씸하거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결국 사이가 소원해진다.

둘째, 상대방이 내 피드백과 조언을 따랐는데 결과가 좋지 않게되면, 상대방은 나를 원망하게 된다. 결국 사이가 소원해진다.

셋째, 상대방이 내 피드백과 조언을 따라서 좋은 결과가 나왔는데, 나에게 고마워하는 기색이 없다면 서운해 진다. 결국 사이가 소원해진다.

 이렇듯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피드백과 조언을 했을 때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뭘 해도 꼰대짓이 되는 것이다. 꼰대가 뭔가? 옛날 얘기하면서 훈수 두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 귀찮게 계속 달라붙어서 말이다! 듣고 싶지 않은데! 계속!




어쩌다 꼰대

  나이를 먹고, 실패와 성공의 경험이 쌓이면 나도 모르게 꼰대에 가까워질 수 있다. 물론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인데 상대방이 거부하면 어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해산물을 못 먹는 사람에게 랍스터를 억지로 먹이는 건 고문일 뿐이다. 그때마다 "젠장! 왜 랍스터를 줘도 안 먹냐고! 이 좋은 걸! 해산물 전문가가 되려면 넌 이걸 먹어봐야 한다고!" 라고 할 텐가?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꼰대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이를 먹다보면 자동으로 꼰대가 되기 때문이다. 꼰대가 되는 게 디폴트라면, 꼰대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꼰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쩌다 꼰대가 되지 않도록 항상 신경써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도 필요하거나 공감이 가는 사람만 읽었으면 한다. 필요하지 않거나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글이 굉장히 불편하고 지루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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