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ook of Knowledge/시
9월의 미발-김성대
9월의 미발-김성대
2017.09.149월의 미발 여생의 예의 바람을 잘 느끼기 위해 머리를 길렀다 시간을 잘 느끼기 위해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린다 몸을 줍지는 않는다 여생의 예의란 그런 게 아니지 살아 있지 않는 것과 죽어 있지 않은 것이 공평하게 시간을 빌리는 것인데 시나브로 몸을 영결하는 오후 막 병실을 들어온 신참 환자처럼 오늘은 이빨이 맑다 근성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어 잠든 사이 나도 모르게 이빨이 물었다 오는 것은 무엇일까 ..., 일어났어? 우연의 방 서로의 알람이 되어가고 있는 방 열은 높은데 몸은 느리고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남아 있는 것이다 늘 처음 같아서 미리 와 있는 것 같은 서로의 우연이 되어가고 있는 것 우연이라고 해서는 안될까 잠은 점점 멀리서 오고 몸을 기다리는 현기와 제 무렵을 맡겨오는 그림자 나..
노인이 되는 방법-안주철
노인이 되는 방법-안주철
2017.09.13노인이 되는 방법안주철혼자 밥을 먹어도 외롭지 않다. 식탐 때문에혼자 밤늦게 산책을 해도 두렵지 않다.미인이 쓰러져 뒹구는 술집 근처에 살기 때문에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지 않아도말할 사람도 없고애써 기억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도 심심하다.친구는 사라진 일자리에 빠져 있고나는 옆 테이블에 앉은 미인의 다리가 궁금해서아내와 통화를 해도 할 말이 없다.애인이라도 생겼다면 거짓말이라도 정성스럽게 할 텐데.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신기한 것이 하나도 없다.사진을 몇 장 찍으며 나를 속인다. 혼자 밥을 먹으면 눈물이 난다. 식욕이 없어서혼자 산책을 하면 외롭다. 상점이 모두 문을 닫아서혼자 영화를 보면 구석에 혼자 가서 울고 싶다등이 갈라지면서 또 하나의 내가 기어나와갈라지 등을 두드리며 나를 위로해 줄 것..
완강한 독서-윤성학
완강한 독서-윤성학
2017.09.12완강한 독서윤성학전철에서 넋 놓고 책 읽다가어느새 환승역에 닿아얼른 가방에 쑤셔넣고 내렸다갈아타서 다시 꺼내는데다른 책 한 권이 꼬리를 물고 딸려나온다.둘의 갈피가 엇갈리며 맞물려 빠지지 않는다힘껏 당겨봐도 갈피들의 결속이 나의 완력보다 세다이건 힘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다당신과 나의 갈피들찢어지고 구겨지기 쉬웠던 종잇장엇갈려서 맞물려서힘으로 어찌해보려는 것들보다 세질수 있다면 한 장, 한 장나에게 포개고 싶은 그대여오늘책을 읽었다
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김규동
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김규동
2017.09.11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김규동꿈에 네가 왔더라스물세 살 때 훌쩍 떠난 네가마흔일곱 살 나그네 되어네가 왔더라살아생전에 만나라도 보았으면허구한 날 근심만 하더 네가 왔더라너는 울기만 하더라내 무릎에 머리를 묻고한마디 말도 없이어린애처럼 그저 울기만 하더라목놓아 울기만 하더라네가 어쩌면 그처럼 여위었느냐멀고먼 날들을 죽지 않고 살아서네가 날 찾아 정말 왔더라너는 내게 말하더라다신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고눈물어린 두 눈이 그렇게 말하더라.
모든 첫번째가 나를 by 김혜수
모든 첫번째가 나를 by 김혜수
2017.06.24 모든 첫번째가 나를 모든 첫번째가 나를 끌고 다니네 아침에 버스에서 들은 첫번째 노래가 하루를 끌고 다니네 나는 첫 노래의 마술에서 풀려나지 못하네 태엽 감긴 자동인형처럼 첫 노래를 흥얼거리며 밥을 먹다가 거리를 걷다가 흥정을 하다가 거스름돈을 받다가 아침에 들은 첫번째 노래를 흥얼거리네 모든 첫번째 기척들이 나를 끌고 다니네 첫 떨림과 첫 경험과 첫사랑과 첫 눈물이 예인선처럼 나를 끌고 모든 설레임과 망설임과 회한을 지나 모든 두번째와 모든 세번째를 지나 모든 마지막 앞에 나를 짐처럼 부려놓으리 나는, 모든, 첫번째의, 인질, 잠을 자면서도 나는 아침에 들은 첫 노래를 흥얼거리네 나는, 모든, 첫 기척의, 볼모
감자꽃 by 권태응
감자꽃 by 권태응
2017.06.21감자꽃권태응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모기가 내 팔을 물었을 때 by 양애경
모기가 내 팔을 물었을 때 by 양애경
2017.06.20모기가 내 팔을 물었을 때양애경 어느 틈에팔 안쪽 한곳이 도도록하게 부어오르고자세히 들여다보이는 작은 구멍이 나 있다모기의 침의 굵기만큼의 구멍이다아주 조금, 한모금만이었을까아니면 욕심껏 꿀꺽꿀꺽 마셨을까?침도 조그만 작은 모기가나를 최면에 걸었던 것일까? 빨리는 동안전혀 알지 못했다독액을 주입하고 피를 마신 다음모기는 날아가버렸다푸른 핏줄이 비치는 살 위로가려운 붉은 기운이 미칠 듯 달려가고살을 긁으면곧 실핏줄들이 터져 붉은 점투성이의 얼룩이 진다 작은 모기에게내 몸은 고기의 산, 피의 강이겠지그러므로 모기는 나를 사랑하겠지깨물기 연한 살과 진하고 깨끗한 즙먹고 싶을 때 팔을 내주는 온순한 애인 그래, 적어도 나는 모기에게는 완벽한 애인이 될 수 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