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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제대한지 어느 덧 10년이 넘었다. 군 복무 시절에 내무실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 한 권을 읽은 적이 있다. 중학교부터 무협지와 판타지 소설 외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었는데 군대에서는 아무 소설책이라도 읽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랄까? 


그 책은 당시 22살이었던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치 19금 영화였던 '비트'를 16살 때 보니 정서 붕괴가 왔던 경험과 비슷했다. 등장 인물들은 모두 굉장히 어두웠고, 자살하는 캐릭터가 많았으며, 남자 주인공은 여러 여자 주인공들과 섹스를 나누는 책이었다. 그 책은 그 이후로 나의 인생 소설이 되었다. 크게 2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 여러 등장 인물들이 나왔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그들의 정서 상태와 생각이 모두 공감됐다. 두 번째는 너무 리얼한 섹스 묘사 때문이었다. 그 책이 나온지 굉장히 오래 됐는데 내가 군 복무 시절하던 당시만 해도 그런 적나라한 현실적인 섹스 묘사는 없었다. 섹스 장면이 나온다면 영화든 소설이든 '아름답게', '멋지게', '향기롭게' 묘사하고 연출했기 때문이다. 그런 연출 대신에 다분히 현실적인 묘사가 마음에 들었다.


그 책의 제목은 '상실의 시대'였다.




다시 읽다

그렇게 10년 동안 상실의 시대는 나의 넘버원 소설이었다. 최근에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리뉴얼 되어 출간된 것을 발견했다. 오랜 만에 인생 소설을 다시 읽어볼 마음으로 책을 구매했다. 그리고 하루 만에 몽땅 읽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10년 전에 군대에서 느꼈던 그 때 그 감정과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다.


먼저 등장 인물들이 하나같이 정신 병자로 느껴졌다. 뭐, 특정 상황에서는 저럴 수도 있겠다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겠지만 예전만큼 100% 완전 공감한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섹스신도 과거만큼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충격에 빠졌다. 뭐지? 내 인생 소설이었는데 그 때랑 뭐가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거지? 이유가 뭐지?



공감의 타이밍

이유는 단순했다. 책은 그대로였지만 내가 달라진 것이다. 나는 사춘기가 남들보다 좀 늦게 왔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20대 초반부터 20대 후반까지 긴 사춘기를 겪었던 것 같다. 대학생 당시에 유행했던 싸이월드를 살펴보면 모든 일기장이 우울과 사회 비판으로 이루어져 있는 걸 보고선 '내가 이렇게 어둡고 부정적인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니 말이다.


22살 군 복무시절 당시, 나는 생각이 많았고, 어두웠으며, 외로웠고, 사회 비판적이었다. 단언컨대 나의 상태는 상실의 시대 등장 인물들의 정서와 싱크로율 90% 이상 이었다. 나와 같은 상태의 책을 만나니 인생 책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지금은 사춘기가 지나 어느정도 안정기다보니 정서 불안자들에 대해서 공감보다는 제 3자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물론 오춘기를 다소 겪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섹스 장면의 경우, 한창 혈기왕성한 시기에 호기심 많은 20대 청년에게 리얼한 현실적인 섹스 장면은 인상깊게 다가왔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나에겐 얼마 전에 태어난 딸도 있다. 섹스 장면이 아름답든 현실적이든 지금의 나에게 전혀 감흥은 없다. 




결국 공감은 타이밍이었다.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시대 경험과 싱크가 맞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정서와 생각을 느끼는 무언가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건 당연하다. 그게 사람이든 소설이든 영화든 말이다.


그래서 사람도 오랜 만에 만나면 다른 느낌을 받고, 책도 다시 읽으면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독서 토론을 할 때 같은 장면을 두고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느끼는 건 각자의 현재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밌지 않은가? 각자의 상태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게? 


인상깊었던 사람에게 연락해서 오랜 만에 한 번 만나보자, 감명 깊었던 책을 다시 꺼내 보자, 새로운 깨달음이 올 것이다.



4월 온라인 독서토론 신청하기 (도서 : 노르웨이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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