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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는 형님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혈액암 투병 후, 방송에 복귀한 허지웅씨가 게스트로 나왔다. 허지웅씨가 이런 말을 했다. 암병동에서는 모두가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그 중에서도 아는 형님을 본다고 말이다. 살기 위해서.

 

2.

예전에도 비슷한 류의 저런 말들을 들었지만 크게 와 닿지는 않았었다. 사람은 역시나 경험적 사고를 하는 동물일까? 최근에 겪은 아니,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상황 때문인지도 몰라도 허지웅씨의 말이 크게 와 닿았다.

 

3.

최근 이직한 회사에서 적응이 어려웠던 관계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내 부족한 능력 탓도 컸고, 가치관, 커뮤니케이션, 일하는 방식, 조직 문화 등 대부분의 면에서 적응이 쉽지 않았다. 나이와 연차가 어느정도 있다보니 조직에서 거는 기대치는 높았고, 적응이 어려운 상태에서 모든 것이 버거웠다. 그러다보니 야근도 많아지고, 매일 혼자 술을 먹게 되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스트레스로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설상가상으로 적응이 더디다 보니 상사와도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하며 스트레스는 더욱 커져만 갔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자 스트레스 이완제와 숙면 유도제, 심신 안정기구까지 구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하루를 멀다하고 계속되는 상사의 짜증섞인 면담에 자존감과 자신감은 바닥을 치기 시작했고, 하루하루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4.

이런 상태가 몇 개월 지속되다보니 주말과 공휴일에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리프레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느꼈지만 생각할 수 있는 에너지 조차 없다보니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게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 놓고 있는 거였다. 웃고 싶었다. 아니, 인위적으로라도 웃어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헛웃음이라도 나면 잠깐이나마 기분이 풀렸다. 아무런 에너지가 없는 상황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으로 아주 잠깐이마나 웃을 수 있었다. 

 

5.

이런 경험을 하고나니 허지웅씨의 저 말이 이해가 갔다. 허지웅씨의 말처럼 예능인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일에 임하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살리고 있다는 말은 진짜다. 누군가는 TV를 바보상자라 하고, 그 중에서 특히 예능 프로그램은 쓸데 없다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떤 이유로든지 에너지가 바닥인 누군가들에게는 살기위한 벼랑 끝 치료제이기도 하다.

 

많은 예능인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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