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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카풀이 이슈다. 공유 경제와 택시 기사들 간 기싸움이 팽팽하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얘기가 있는데 바로 '붉은 깃발법'이다. 과연 카풀에 대한 논란은 붉은 깃발법과 유사한 사례로 남을 것일까? 생각해 볼만한 재밌는 주제다.


붉은 깃발법이 생소한 사람들을 위해 아래 요약을 해 놓았다.




붉은 깃발법

  •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1865년), 자동차의 등장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마차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
  • 당시 증기 자동차의 출현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마차 업자들의 항의가 들끓자 제정된 법안
  • 기존 마차 사업을 보호하고 마부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조치


원칙

  • 한 대의 자동차에는 반드시 운전사, 기관원, 기수 등 3명이 있어야 한다. 
  • 기수는 낮에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자동차 55m 앞에서 차를 선도한다.
  •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6.4km/h, 시가지에서는 3.2km/h로 제한한다.


1878 개정법

  • 붉은 깃발의 필요성은 제거.
  • 전방보행 요원의 거리가 55미터에서 18미터로 단축.
  • 말들을 우연히 만날 경우, 차량 정지
  • 차량이 말을 놀라게 하는 연기나 증기를 내는 것을 금지
  • 1896년 폐지


붉은 깃발법은 1896년까지 약 30년간 유지되면서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 욕구를 감소시키는 주원인이 되었다. 특히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던 영국은 자동차를 가장 먼저 만들고도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독일 ・ 미국 ・ 프랑스 등에 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어떤가? 아마도 과거 마부들과 현재 택시 기사들이 오버랩 되고, 자동차와 카풀이 오버랩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공유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며 드는 사례가 바로 이 붉은 깃발법이다. 사실 붉은 깃발법이라는 사례와 별개로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새로이 준비하고 혁신을 도모하는 건 아무렴 당연하다. 아마도 문제는 변화로 인해 기득권을 잃는 사람들과의 갭을 얼마나 현명하게 좁히느냐일 것이다. (택시 기사의 수입 저하 vs 시민의 편의성 증대)


그런데 붉은 깃발법을 사례로 내세우기엔 조금 찝찝한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역사적 기록은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영국이 바보는 아니었을 것이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당시에는 증기 기관차를 이용하고 있었고, 증기차를 상용화 하기엔 무리가 많았을 것이다. 폭발의 위험과 소음도 문제였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그 당시는 붉은 깃발법이 최선의 결정이었을 거다. 영국의 패착은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해소됐거나, 해소될 조짐이 보일 때, 변화에 맞춰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를 했어야 했는데 방치했던 것이다. 가솔린 내연기관이 나왔을 때 발 빠르게 붉은 깃발법을 개정/폐지 했어야 했다. 그렇게 후기에는 붉은 깃발법이 시대착오적인 법이 되어 버렸다.


요약하면 붉은 깃발법을 시대착오적 규제라고만 보기엔 너무 결과론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처음 시작은 일정 부분 시민의 안전을 우선하고, 증기차의 불안정성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합리적 의사결정이었을 것이다. 물론 마부들의 생존권 문제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말하고 싶은 건 마부들의 생존권 요구와 항의 때문에 붉은 깃발법이 생겼다고만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어찌됐든 공유 경제는 시대적 흐름으로 보인다. 현재 택시기사들의 시위는 초기 붉은 깃발법이 아니라 가솔린 내연기관이 나온 상태에서 방치된 후기 붉은 깃발법과 비교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붉은 깃발법을 언급한 것에 대해 붉은 깃발법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하는 글을 꽤 있는데 이는 말꼬리 붙잡는 것밖에 안 된다. 초기와 후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문대통령이 언급한 맥락은 후기 붉은 깃발법을 의미한 거라고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를 이해하지 않고 말 꼬투리만 붙잡는 건 건설적인 논의가 아니다.



택시 업계에 의견을 좀 주자면 현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시위하기 보다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택시 서비스 자체를 혁신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는 게 좀 더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카카오 카풀을 어떻게 잘 보내 버린다고 해도 세계적으로 우버 택시가 보편화 된 시대에 글로벌 서비스들이 계속해서 치고 들어올 테니 말이다. 구멍난 물통을 언제까지나 휴지로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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