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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름이라는 구속

 

 괴로움이 왜 일어날까를 생각해 보자. 무언가와의 Gap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럼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자. 가치, 정의, 원칙 등 여러가지 말이 있겠지만 한 가지 단어로 표현하면 올바름이라고 하겠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올바름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자라왔다. 그래서 실제로 경험해 보지도, 생각해 보지도 않고 '나쁘다'라고 여기는 것들이 많아졌다.

 

나쁘다고 생각해서 나쁘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어린 아이를 생각해 보자. 어린 아이는 아직 옳고 그름에 대해 인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 행동을 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도 그렇다. 

 

힘들게 취업난을 뚫고, 기업에 입사했다고 치자. 그런데 매일 혼나고, 실수를 한다. 마치 부적응자가 된 것 같다. 괴롭다. 이 괴로움을 뜯어보면 '첫 직장에서 잘 하지 못하면 나쁜거야'라는 올바른 생각이 숨어 있는 걸 알 수 있다. 괴로움, 즉 죄를 지은 자신을 책망하기 전에 자신이 품고 있는 올바름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절대적으로 맞다고 여기던 올바름은 맞는걸까? 이런 식으로 내 안에 고착화 되어 있는 수 많은 올바른 전제조건들은 얼마나 더 있을까?

 

 

이해할 수 있는 충고는 참고용이다

괴로움이 있을 때, 책을 읽어서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주변에 조언과 충고를 받고 생각이 정리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 맹점이 있다.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 때, '올바르다', 이해할 수 없을 때, '나쁘다'라고 구분을  하게 된다. 사회에서는 이해받지 못하는 그룹을 나쁜 사람으로 대하곤 한다. 여튼 이런 점에서 남의 조언이나 충고가 이해가 된다면, 그 조언과 충고를 듣기 전에 이미 다 알고 있었던 내용이라는 거다. 남의 조언과 충고는 내가 이미 정한 답에 대해 정리만 해줄 뿐이다. 

 

정말 새로운 차원의 해결책을 원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조언과 충고를 들어야 한다.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과 생각과 충고들만 듣는다면 지금과 별반 다를바 없게 된다.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 즉 소위 '나쁘다'라고 여기는 내 이해 밖의 영역에는 실제로 내가 이해하기 버거운 것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해 불가의 영역에 내가 발전하고 더 좋을 수 있는 것도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괴로움은 내가 가진 (올바름에 대한) 신념으로부터 파생된다. 괴로울 땐 그 신념에 대해 의심해 보는 게 필요하다. 혼자 생각하기 버겁다면 남에게 조언을 들어보자. 이해할 수 있는 조언 말고, 개떡 같고 이해할 수 없는 조언을 들어보자. 그 사람은 이미 내 이해를 넘어선, 더 확장된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쁘다고 생각하면 나쁘게 보이고, 좋다고 생각하면 좋게 보인다.

그리고 그 나쁘다는 걸 나에게 좋게 사용하면 된다.

 

- 본 글은 도서 '악마와의 대화' 올바름을 의심하라 챕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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