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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상어 중에 코이라는 물고기가 있다. 집의 작은 어항에서 키우면 5~8cm 크기로 자라고, 수족관이나 연못에서 키우면 15~25cm로 자라며, 큰 강물에서 자랐을 땐 90~120cm까지 자란다고 한다. 코이라는 물고기를 보면 인간도 환경에 따라 성장할 수 있는 존재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환경에 따라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은 삶은 개척할 수 있다는 자유의지 철학으로 볼 수 있다.

 

2.

비슷하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사회생활에서 자주 통용된다. 일단 중요한 업무나 직책을 맡게 되면 그에 맞게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직장인들이 본인들의 경험에 따라 만들어 낸 말인데, 코이라는 물고기처럼 인간도 환경에 따라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3.

그런데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다른 방향의 말을 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환경은 단지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도록 만들 뿐이다” 이는 위에서 말한 환경에 따라 성장할 수 있다와 다른 의미다. 에픽테토스 버전으로 해석하면 '코이는 본질을 타고 났기에 환경이 갖춰졌을 때 성장할 수 있었다'는 말이 되어 버린다. 본질이 정해져 있다면 삶은 정해진 운명이라는 숙명론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코이의 경우 처럼 기질은 타고 났지만 환경에 따라 본질이 드러나느냐 안 드러나느냐의 차이는 있다.

 

4.

비슷한 개념으로 로렌스 피터 교수가 발표한 피터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다. '사람은 자신의 무능력을 드러낼 때까지 올라간다'는 의미인데 이는 에픽테토스의 말과 일정부분 결이 같다. 본질은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5.

본질이 정해져 있는 숙명론의 반대 개념인 자유의지 철학에 대해 니체는 ’단죄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왜냐면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 대해 의지가 없어 실패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유의지 철학은 겉으로는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실상 꽤나 냉혹한 철학이다. 반대로 숙명론은 뭘 해도 바꿀 수 없기에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6.

코이의 성장, 에픽테토스의 철학, 니체의 철학을 잘 믹스해서 정리해 보면, 환경에 따라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적당히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며, 전혀 변화가 없는 사람도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 같다.

 

7.

하지만 스스로가 환경에 따라 성장할 수 있는 본질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어찌됐든 일단 도전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스스로에 대해 알아갈 수밖에 없는게 인간의 삶이다. 그런 고통의 시간을 지내고 나면 누군가는 성장하여 성공하지만 아쉽게도 누군가는 실패해서 정체된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이는 본질일 수도 있고, 운명일 수도 있다. ‘정체’라고 표현했지만 실상 정체는 아니다. 본질을 수용하고, 긍정하며 성장하는 삶을 살면 된다. 짧게 정리하면 우리는 환경만으로 달라질 수도 없고, 타고난 본질만으로 달라질 수도 없다. 한 가지 기준으로 인간의 성장이나 가치를 규정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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