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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원주까지 아내의 지인 결혼식에 참석할 일이 있었다. 프로포폴 맞은 듯 숙면을 취하며 몇시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야외 결혼식장 이었다. 쫙 깔린 넓은 잔디와 푸른 나무로 이루어진 광경은 매우 멋스러웠다. 파아란 하늘에 하얀 구름 소스를 투척한 날씨까지 환상이었으니 여기서 결혼할 커플은 운이 기가 막히게 좋은 듯 했다. 이렇게 완전 외곽에서 진행하는 야외 결혼식은 처음 와 봤는데 꽤 좋았다. 가는 게 번거롭고 힘들어서 그렇지 숲 속을 산책하는 듯 힐링도 되었기 때문이다.

 아빠 미소를 지으며 젊은이(?)들의 결혼식을 지켜봤다. 축가가 시작됐다. 신랑 친구가 부르기로 했는지 말끔히 준수하게 생긴 청년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게 왠걸? 첫 소절부터 음을 못맞추고 박자가 어긋나서 관객들이 웃기 시작했다. 그리곤 순백의 100% 생목소리에 연속으로 빵빵 터지기 시작했다. 누가봐도 음치에 박치였다. 근데 나는 이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지금도 기질적으로 좀 그렇긴하지만 결혼 전에는 매우 분석적이고 피상적인 사람이었다. 아마 그 당시에 이 장면을 목격했다면 나는 100%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 저런 사람이 축가 부르게 하냐.. 하객들 생각도 해야지. 전문 가수를 부르던가, 노래 좀 부르는 친구 불러서 하객들도 즐기게 해줘야지.. 저건 좀 아니다.. 이벤트의 흠이네.."

 그때는 그저 행사 그 자체, 이벤트의 완성도와 행사에 대한 관객들의 만족도 같은 피상적인 지표들에 대해 집착했기 때문이다. 근데 지금은 음치에 박치인 친구의 노래가 정말 좋았고 흐뭇했다. 이벤트에 대한 완성도 따윈 전혀 생각들지 않았다. 그저 '저 친구는 진짜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해 주는구나. 신랑,신부는  친구에게 진심어린 축가를 받아서 정말 고마워 하겠다. 저런 친구가 있다는 거 자체가 신랑에겐 큰 축복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되는 음치와 박치의 향연 속에서 여기저기 웃음 소리가 들려왔지만 내 마음 속에선 찡~ 한 감동이 밀려왔다.

 아마 결혼을 한 사람들은 이 느낌을 알거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무언가 해주려는 사람", 연인이든 친구든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남은 인생동안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이다.

>> 이후 신부에게 들었는데 이 축가를 부른 친구가 원래 음치, 박치가 훨씬 심했다고 한다. 근데 이 결혼식 축가를 위해 보컬 트레이닝도 받고 엄청난 노력해서 조금 개선이 된거라고..... 폭풍감동


나를 알기 전 보다

나를 알고 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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