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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도끼 은도끼라는 어린이 동화책이 있다.
흔히 알고 있는 그 이야기다.
딸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오랜 만에 다시 읽게 됐는데 어릴 때 읽었을 때와 사뭇 다르게 느껴진 포인트가 있었다. 바로 산신령의 태도였다. 그 포인트를 느끼는 순간 오래 전 회사에서 경험했던 일화도 함께 떠올랐다.

회사 내에서 부서를 옮긴 후,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였다. 한 선배가 나와 1:1을 잡고 둘이 이야기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곤 내게 이 업무에서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내 생각을 말하니 돌아오는 답변은 “그것도 맞는데 다른 거 또?” 였다. 그래서 또 다른 걸 생각해서 말했더니 “그거 말고 또” 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3,4번을 돌다가 결국은 선배가 원하는 답을 말하셨다. 그게 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에 남았던 생각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나한테 계속 물어볼까였다.

흔히 하는 말 중에 가르치는 것보다 질문을 하면서,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식이 좋다고 하지만 그때 경험은 썩 좋지 않았다. 선배가 원하는 답을 찾아내서 말을 해야 하는 그 상황이 꽤나 압박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어떻게든 원하는 답을 생각해 내야한다’라는 마음.

금도끼 은도끼에 나오는 산신령에게서 그 선배가 겹쳐졌다. 산신령은 이미 나무꾼의 도끼가 금도끼인지, 은도끼인지, 쇠도끼인지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모른 척하고 어떤 게 네 도끼인지 물으며 간을 보는 모습이 얼마나 꼴뵈기 싫던지. 정직한 사람을 도와주고 싶었다면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오 마이 갓. 신까지 되는 분이.

말하고보니 마시멜로 실험도 비슷한 느낌이다.
나는 이 실험에 대해 불호 혹은 불쾌함을 느끼는데 그 이유는 대놓고 달콤하게 유혹하면서 견뎌보라고 하는 거 자체가 뭔가 불편하다. 달콤한 유혹을 먼저한 게 나쁜거지 유혹 당했다고 안 좋게 평가받는 게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다.

또 다른 비슷한 사례로는 어릴 때 친구들 간에 의리를 확인한답시고, 새벽에 연락해서 100만원을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 줄 것인가 안 빌려줄 것인가로진정한 친구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도 개인적으로 매우 불호한다. 이미 원하는 답을 가지고 있으면서 상대방을 실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내가 평가판 위에 올라가서 실험체가 되는 걸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그것도 심지어 가짜 평가판이라면 말이다.

산신령과 선배, 마시멜로 실험 등을 얘기해 보면서 앞으로만이라도 상대방을 실험대에 세우진 말자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쉽진 않겠지. 살다보면 살기 위해 사람 보는 눈이 필요한데 그 눈이 없으면 실험이라도 해야 리스크를 피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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