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즐겨보는 TV프로그램 중 하나인 쇼미더머니6에서 내 관심을 끄는 장면이 하나 나왔다. 바로 행주의 최면 체험이었다. 최면 컨셉의 랩을 하기 위해 직접 최면을 체험해 보는 과정이었는데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내가 최면을 배우고 나서 최면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꼈기 때문이다. 뭐, 나도 그랬지만 최면에 대한 대중들이 오해는 크고, 특히나 미디어에서는 자극적으로 편집해서 내보내다보니 마술 혹은 무서운 무언가로 비춰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편집한 상태의 내용을 보면 행주가 정신을 잃고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과거에 이런 장면을 보면 정신을 잃었나 보다? '와~ 저렇게 다른 세계에 있는 게 최면이구나!' 라고 생각하곤 했다. 근데 행주는 아주 똘망똘망 맨정신이었을 거다.


 최면에 대한 오해는 대충 아래와 같을 거다. 내가 생각했던 최면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자면..

  • 최면을 걸리면(?) 정신을 잃는다 
  • 최면술사(?)가 최면을 건다
  • 최면에 걸리면(?) 내가 내 몸을 컨트롤 할 수 없다.
  • 최면 상태에서는 과거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 내 의지와 상관없이 최면술사가 최면을 걸 수 있다.
 뭐 대충 이정도일 것 같다. 우선 최면의 범위는 사소하게는 일상에서부터 상담까지 들어가는데 우리는 일상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최면 상태로 들어가곤 한다. 고속도로에서 운전할 때 시간과 공간 감각이 모호해지는 경험을 하는데, 이를 최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TV나 영화를 볼 때 집중해서 다른 소리를 못들을 때도 최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정도의 최면 상태는 타인이나 미디어가 최면을 건다고 볼 수도 있겠다. 
 조금 더 깊은 최면은 상담에서 볼 수 있는데, 행주가 경험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최면은 계약이 필요하다. 내면 탐색을 위해 최면을 할 거고, 최면술사(?)가 피해를 주거나 악용하지 않을테니 나를 믿고, 내 가이드에 따라올 것을 약속하는 계약이다. 이 계약이 중요한 게 뭐냐면, 최면 상담가가 일어나서 춤을 추라고 요청하면 춤을 춰야 한다는 거다.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근데 이런 걸 쏙 빼놓고 일어나서 춤추는 장면만 똑 잘라서 미디어에서 본다면 최면에 걸린 사람이 정신을 잃고 꼭두각시처럼 조종 당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거다.
 그런 점에서 최면을 건다라는 표현은 틀렸다. 최면에 들어가도록 도와준다 혹은 지원, 안내라고 하는 게 맞겠다. 행주도 그런 약속을 하고 최면을 경험했을 거고 말이다. (그래서 행주가 최면이 진짜 별거 없었다고 말했을 거다) 최면은 내 마음 속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이게 뭐냐면 명상과 비슷하다. 명상이 별 것 아니면 별 것 아니고, 별 것이라면 별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살면서 조용하게 눈을 감고 시간을 보내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저 눈을 뜨고 보고 듣고, 만지는 것에 익숙할 뿐이다. 오감에 항상 노출 되어 있다는 건 그만큼 항상 긴장과 경직 상태라는 말인데 이런 상태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보듬기란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눈을 감고 온 몸을 편안하게 이완하고 내 마음을 조용하게 들여다 본다는 건 별 것 아닌 거지만,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최면은 몸을 편안하게 이완한 상태에서 눈을 감고 내 마음 속에서 찬찬히 상상해 보는 과정이다.
 그럼 지금까지 한 얘기를 정리해 보면, 최면은 내가 의지를 가지고 최면상담가의 안내에 따르면서 자발적으로 상상하는 과정이다. 그러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내 마음 속의 감정이나 느낌들이 훨씬 더 잘 느껴진다. 반면에 긴장되고 경직된 상태에서는 남들의 시선과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고요하게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상태에서는 긴장 상태일 때보다 훨씬 더 자신의 마음을 잘 이야기할 수 있다. 행주처럼 자신의 마음과 감정 상태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내 의지에 따라 순간 눈을 번쩍뜰 수도 있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초반에 계약을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약속은 지켜야 하니깐. 최면 상담가가 강도도 아니기도 하고, 돈내고 계약하고 최면에 들어가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사람은 많진 않다.
 과거 기억의 경우, 정확하게 기억하는지는 증명할 수 없다. 진실은 아무도 모르니 말이다. 다만 고요하게 마음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긴장 상태보다 훨씬 더 기억이 잘 나긴 한다. 기억이 정확하냐 아니냐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가장 흥미로운 비유가 전생 체험이다. 이 전생이 진짜냐 아니냐로 갑을논박이 많은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최면 상담을 하는 이유는 내담자의 치유와 힐링을 위해서다. 결과적으로 내담자가 행복해지고 치유됐다면 전생이 진짜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기억이 정확하냐 아니냐 보다는 그런 기억을 불러와서 해결함에따라 내담자가 건강해 졌다면 그걸로 된거다.
 최면의 깊이는 다양한데, 현존하는 가장 깊은 정도는 울트라뎁스라는 최면이다. 이 경우, 정신이 블랙아웃되고, 다른 나라 언어로 이야기하거나 의자 뒤에 붙어있는 글씨까지 보는 투시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세계에서 이 최면 상태를 불러오는 최면 상담가는 그리 많지 않다. 이 경우에 실제 최면으로 마취까지 가능하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미디어나 길거리에서 보는 최면술사들은 정신을 잃게 하면서 상대방을 컨트롤하는 건 아니다.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고 진행하는 최면이기 때문에 일정부분 쇼라고 보면 이해가 수월할 것이다. (뭐 아주 가벼운 상태의 최면으로는 언어 스킬을 통해 설득이 잘 되게 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최면에 대한 오해 얘기가 길어졌는데, 여튼 행주의 최면 상담 장면을 보고선 우리가 고요하게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느껴보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최면을 배우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하던 관점이었다. 또 한가지 흥미로웠던 장면은 행주의 여러 이야기를 듣고 지코와 딘이 마음으로 공명을 이루고, 먹먹해 하는 느낌이 나에게 전해졌다는 거다. 그 느낌이 뭔지 알 것 같다. 나도 최면 상담을 진행하면서 내담자들이 울고, 슬퍼하고, 치유되는 모습을 보면 울컥 하는 게 있다. 왜냐면 실제로 나 아닌 사람이 내 앞에서 눈치 보지 않고 감정을 털어 놓고, 맨 자신을 보여주는 일이 일상에서는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 그런 모습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공명이 일어난다. 동정심이나 그런 느낌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같은 인간이구나 라는 동질감이라고나 할까? 너와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느낌이다. 아마 지코와 딘이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하며 '우리'라는 느낌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그런 경험이 삶에 파워풀한 힘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의 일상에서는 그런 경험을 거의 하지 못한다. 그저 남에게 강한 모습만 보이고, 아픈 걸 숨기고, 자존심을 내세우고 경쟁하고 살다보니 말이다.

 방송에서는 행주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만 간략히 나왔는데, 이어서 자존감 높이기나 그림자 통합과 같은 작업까지 이루어 졌기를 생각해 본다. 방송을 보고 다시금 느꼈지만 고요하게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참 중요하다.

[9/3 "자존감이 뭐라고" 특강 신청하기(클릭)]


나를 알기 전 보다

나를 알고 난 후에

당신의 삶이 더 좋아지기를

반응형

'창고 > 블랙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걸어가는 퇴근 길  (0) 2017.08.30
짜증이 올라올 때  (0) 2017.08.27
자존감이 뭐라고  (0) 2017.08.24
내가 원하는 것을 아는 것  (0) 2017.08.19
이론과 실전의 차이  (0) 2017.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