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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라는 단어가 삶에 존재하지 않았던 남자

 어릴 때 엄마로부터 주로 듣던 말이 있다.

"방 정리 좀 해라. 돼지 우리도 아니고.." 

그때마다 나의 대응은 한결 같았다.

"이래도 나만의 정리가 있어"


체계적으로 꼼꼼하게 정리하지 않아도 내가 찾는 책이나 종이가 어디 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어질러 놓는 것이 편했다.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사업을 하거나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정리가 필요한 시기가 온다. 머리 속에서 대충 찾을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는 복잡성에 마주하기 때문이다.


 책정리를 예로 들어보자.

길동이에게 빌린 책 / 철수에게 빌린 책 / 철학입문 교재 / 독서모임 선정 책 / 책방에서 빌린 소설책

 이렇게 5권의 책이 어질러져 있다면 대충 머리 속에서 정리가 가능하다. 그래서 이 5권의 책은 내 방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어도 상관 없다. 대략 이 정도 레벨이 사회 생활 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사회 생활을 하게되면 상당히 복잡해지고 양이 많아지게 된다.

길동이에게 빌린 소설책 / 길동이에게 빌린 전공서적 / 철수에게 빌려줄 전공서적 / 독서모임 선정 책 / 책방에서 빌린 만화책 / 책방에서 빌린 소설책 / 매주 구독하는 잡지 / 매주 스크랩해야 하는 잡지 / 매월 강의를 위해 읽어야하는 인문학 서적

이런 식으로 머리 속에서 정리가 어렵게 확장된다. 정리하지 않으면 책을 찾기도, 현황 파악도 어려워 지는 것이다. 하는 일이 복잡해지고, 커질수록 정리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정리하는 것과 정리를 잘 하는 것

 정리하는 게 취미 혹은 습관인 사람이 있다. 이 사람들을 정리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순히 정리를 한다고 해서 정리를 '잘'한다고 볼 수는 없다. 정리는 단순한 행동이지만 정리를 '잘'하는 건 고도의 능력을 통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책을 단순히 정리해 보자.

[내 책장에 있는 책들]

- 길동이에게 빌린 소설책

- 길동이에게 빌린 전공서적

- 철수에게 빌려줄 전공서적

- 독서모임 선정 책

- 책방에서 빌린 만화책

- 책방에서 빌린 소설책

- 매주 구독하는 잡지

- 매주 스크랩해야 하는 잡지

- 매월 강의를 위해 읽어야하는 인문학 서적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잘' 정리한다면 뭐가 달라질까?

[내 책장에 있는 책들]

1. 반납해야 하는 책

- 길동이에게 빌린 소설책

- 길동이에게 빌린 전공서적

- 책방에서 빌린 만화책

- 책방에서 빌린 소설책


2. 빌려줄 책

- 철수에게 빌려줄 전공서적


3. 주간/월간 스터디용 책

- 매주 구독하는 잡지

- 매주 스크랩해야 하는 잡지

- 매월 강의를 위해 읽어야하는 인문학 서적


 이런 식으로 구분자를 넣어 정리하는 게 추가될 수 있겠다. 요약하면 단순히 정리한다는 건 정보를 한 곳에 모은다는 개념이고, '잘' 정리한다는 건 기준을 세워서 구분한다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정리를 '잘'하기 위한 능력

 정리를 '잘'한다는 것은 전체 판을 보고 구역을 나눠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여러가지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첫째, 전체판을 파악하는 시야가 있어야 한다.

갖고 있는 정보가 책이라는 종류고, 누구에게 어떤 관계의 책인지 대략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회사로 치면 내 담당업무가 전체적으로 어떤 거고, 어떤 프로세스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 전체판이 간단하게 이해될 수 있도록 구분해야 한다.

그리곤 그 책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카테고리를 세분화 할수록 그룹은 많아지게 되는데 회사로 치면 폴더 안의 폴더가 많아진다고 보면 된다.


셋째, 사용 목적에 맞게 나눠야 한다.

사용 목적에 따라 구분자가 달라질 수 있다. 위 예시에선 빌린책과 빌릴책 기준으로 카테고리를 나누었는데 길동이와 관련된 책 / 철수와 관련된 책 / 책방과 관련된 책, 이런 식으로 사람에 따라 나눌 수도 있다는 말이다. 회사를 예로들면..

2018년 > 체육대회 > 장기자랑

2018년 > 체육대회 > 철인 3종 경기

이런 식의 폴더를 나눌 수 있는데, 담당자가 10년 이상 근무한다면 위의 구분자 보다는 아래의 구분자가 더 편리할 수 있다.

체육대회 > 2018년 > 장기자랑

체육대회 > 2019년 > 장기자랑


년도별로 구분자를 두느냐, 주제별로 구분자를 두느냐의 차이인데, 10년간 동일한 담당자라면 10개의 구분자(년도별)보다는 1개(주제별)의 구분자로 관리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상위 폴더로 갈수록 개수가 적은 게 '잘' 정리된 구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주절주절 말이 길었다. 하고 싶은 말은 3가지다.

1. 일이 복잡해지고 많아질수록 정리는 필요하다. 

2. 단순히 정리하는 것과 정리를 '잘'하는 것은 다르다.

3. 정리를 '잘'한다는 것은 효과적으로 생각하는 역량(사고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잘' 정리해서 스마트하게 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사람이 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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